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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인신문>용인독립기념관 건립 원년 됐으면” 한 목소리 소망
글쓴이 :
최고관리자
등록일 :
2019-12-04 13:42:59
조회수 :
1,871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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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인신문] 용인독립운동 학술발표회가 한시준 단국대 교수를 좌장으로 지난 22일 용인시청 국제회의실에서 열렸다. 이날 행사는 3.1운동 100주년 기념 마무리 행사로 용인문화원과 부설 용인학연구소가 마련했다.
이날 가장 중요하게 모아진 중의는 ‘용인독립기념관 건립’의 건이었다. 이날 참석자들은 “용인독립기념관을 건립하는 원년이 됐으면 좋겠다”고 입을 모았다. 이날 토론자로 참석한 유진선 용인시의원은 “용인독립기념관 건립이 중기재정계획에 들어갔다. 현재 부지는 원삼면 좌찬고개 기념공원으로 추진되고 있다”며 올해 용인시항일독립운동 기념사업 지원조례가 통과됐으니만큼 앞으로 독립기념관 건립을 위해 최선을 다하겠다고 말했다.
또한 그간 용인 최초의 만세시위로 알려진 원삼면 좌전고개 만세운동이 1919년 3월 21일이 아니라 3월 31일일 수 있다는 새로운 자료가 제시됐다. 아예 용인 기흥의 금화지역에서 3월 12일에 용인 최초 시위가 일어났다는 문건도 제시돼 앞으로 보다 심도 있는 연구와 토론이 필요하다는 것으로 결론을 맺었다.
이와 함께 김혁장군에 대한 기초 자료 부족 등 연구자료 확보의 시급성이 논의 되기도 했다. 또한 일진회장 송병준 별장터에 유일하게 남아있는 영화지를 보존해 일제수탈 교육의 장으로 활용해야 한다는 의견이 제시됐다.
원삼면 좌전고개 만세운동일
1919년 3월 31일 새자료 제시
김혁장군 연구자료 확보 시급
이와함께 용인독립유적지 탐방 코스를 마련해 해설사의 해설을 듣는 체험 교육이 필요하고, 3.1절 기념식에서 만세만 부를 게 아니라 그 시대의 잔혹함과 고통을 입체적으로 이해할 수 있는 다양한 콘텐츠가 있어야 하며, 역사적 사실에 근거한 릴레이만세운동 재현을 통해 독립운동을 축제화 시켜 시민 다수가 참여할 수 있게 하자는 안이 제시되기도 했다.
이번 학술발표회는 용인 독립운동의 실천방향을 찾는 시금석이 되고, 후손에게 역사적 자긍심을 심어주는 계기가 되길 바라는 자리였다.
김혁의 독립운동과 혁명 사상의 이해
이날 제1주제는 ‘오석 김혁의 독립운동과 혁명 사상의 이해’로 권행완 다산연구소 연구실장이 했다.
권 실장은 “김혁 장군에 대한 자료가 부족하고 신민부에 대한 연구가 점차 심화 발전되는 것과는 달리 신민부 중앙집행위원장으로 활약했던 오석 김혁에 대한 연구가 매우 미미한 정도”라고 전제한 후 발제를 이어갔다. 권 실장은 이날 “김혁의 독립운동 행동 배경에는 스승 맹보순의 구국교육, 대한제국 무관학교의 군인정신과 대종교의 민족의식 등이 자리하고 있다”며 김혁이 독립을 꿈꾸었던 사상적 측면을 활동시기별로 살폈다. 김혁이 사농공상의 신분질서와 문관을 우대하고 무관을 천시하는 분위기 속에서도 구국의 일환으로 육군무관학교를 선택해 군인의 길로 들어선 것은 동전 맹보순의 영향이 컸다고 했다. 또한 이날 그동안 김혁이 1907년 군대해산으로 인해 귀향한 후 1910년대 항일투쟁을 위해 압록강 맞은편인 안동현 및 만주지역을 순방하고 돌아와 3.1운동 후 망명하는 것으로 알려진 것과 달리 이미 이 시기에 독립운동을 위해 조직적으로 활동한 것으로 보인다고 했다. 또한 김혁은 만주 성신태 상회 시기인 1912년(38) 경에 대종교에 입교한 것으로 보인다며 성신태에서 스승인 유학자 맹보순과 함께 활동하고 있었는데 어떤 계기로 대종교에 입교했다고 말했다. 김혁은 옥중에서도 맹자를 읽었다고 했다. 권 실장은 맹자를 혁명의 서라면서 독립을 위한 혁명은 옥중에서도 포기하지 않은 것을 보여준다며 김혁을 이날 독립혁명가라 지칭했다.
용인 독립운동 자료 현황과 활용방안
제2주제인 ‘용인 독립운동 자료 현황과 활용방안’에 대해 김명섭 단국대 연구교수는 “용인독립운동기념사업회와 용인문화원 등은 오래전부터 근현대사의 꿈과 교훈을 심어줄 가칭 ‘용인독립운동기념관’ 건립의 필요성을 역설했다”며 “전시할 사료와 유품, 후손들의 열망, 시대적 요구가 충분하다”고 말했다. 이와 함께 일제강점 독립운동 유적지 보존과 활용에 대해 강조하면서 독립지사들의 생가나 순국지, 묘소 등을 비롯해 만세운동 발생지와 일본군의 진압 현장 등을 들었다. 또 송병준 별저, 임옥여 집터 동상, 원삼면사무소, 백암면사무소, 남사면사무소, 이동면사무소, 기흥면사무소, 구 용인군청 터(중앙공영주차장), 용인초등학교, 고기초등학교, 삼악학교터 등 일제의 식민수탈과 독립운동의 현장을 직접 체득할 수 있는 독립운동 사적지, 만세운동이 일어난 현장 등이 역사교육의 산 현장으로 활용돼야 한다고 지적했다. 특히 이완용과 함께 대표적 친일파인 송병준이 말년까지 거주하면서 일진회 본부로 활용하면서 의병과 주민을 탄압했던 양지면 추계리의 99칸 별저가 이미 2004년 허물어져 사라졌고, 다만 연못은 아직 개발되지 않은 채 영화지라는 표석과 함께 방치돼 있다며 적극적인 보존을 고려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김 교수는 일제강점의 수탈현장과 친일파 흔적을 민족교육의 산교육장으로 활용함으로써 특화된 관광자원이 될 수 있다고 덧붙였다.
용인독립운동사 재구성 . 문화콘텐츠 활용방안
제3주제인 ‘용인 독립운동사 재구성 및 문화콘텐츠 활용방안’에 대해 강진갑 경기학회장이 발제했다. 강진갑 교수는 이날 “용인 최초의 만세 시위는 3월 21일 원삼면 시위로 알려져 왔으나 날짜를 새롭게 고증해야 하는 사료가 발굴됐다”고 말했다. 이 사료는 시위를 주동한 독립운동가에 대한 재판기록과 시위에 관한 일제의 보고서다. 이 문제는 그간 원삼면을 용인 3.1운동의 발상지로 규정하고 다양한 사업을 전개온 독립운동 기념사업에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인다고 했다. 또한 이정은의 기고문을 인용해 용인 최초의 만세시위가 3월 12일 기흥면 금화 마을 시위라고 했다. 이는 조선헌병대사령관 고지마 소우지로가 도쿄의 다나카 육군대신에게 긴급 타전한 전보를 토대로 한 것이다. 강 교수는 “이 문제는 앞으로 용인 지역사회가 연구할 과제로서 연구에 따라 용인 3.1운동사가 재구성 돼야 하고 기념사업 방향과 내용도 달라질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