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인 기흥구 농서동에서 태어난 오석(吾石)·김혁(金爀, 1875~1939) 장군
은 대한제국 무관학교에 입학해 육군참의로 근무하면서 평생 군인의 길을 걸
었다. 1907년 한국군대가 강제해산 당하자, 만주로 망명해 항일전선에 나섰
다. 그는 1920년 청산리 전투에 참여한 이후, 신민부에서 중앙집행위원장에
선출되었고 성동사관학교 교장을 맡아 독립군을 양성하였다. 일제에 의해 체
포되어 10년형을 언도받아 1935년 가석방되었으나, 고문후유증으로 사망하
고 말았다.